마케팅적인 측면에서 이용이 쉽다 보니 화장품 마케팅에는 주로 생물학적인 연구 데이터들이 사용된다. 대부분의 경우 특정 (식물) 추출물의 피부에 대한 효능과, 실제로 인체 피부에 적용시 임상적 효능 정도다. 사실상 일반 소비자가 접하는 화장품의 과학이란 이것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학회에서 화장품에 적용되는 기술이라 하면 화학 공학이 있다. 애초에 화장품이라는 게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어 놓은 물건이 아니던가.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는다. 그걸 섞고, 아주 안정적으로 수년간 그 성상이 변하지 않게 유지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가끔은 매일 찍어 발랐던 화장품이 달리 보이기도 한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화장품에 또다른 과학 기술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철저하게 공학이다. 트렌드라고 하기에는 시작 단계이고 최첨단 기술을 알아보기 가장 좋은 것이 매년 열리는 라스베가스 소비자 가전 전시회 (Consumer Electronics Show, 이하 CES) 이기에 CES의 화장품 관련 출품들을 훑어보려 한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제품은 P&G에서 발표했다. P&G는 CES에서 소비자 일상 생활의 개선을 주제로 다양한 분야의 제품을 선보였다. Oral-B iO는 전자동 칫솔로 frictionless magnetic을 이용하여 칫솔모의 끝부분까지 미세 진동이 전달되게 한 제품이다. Airia는 홈 프레그런스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다. 스마트 딜리버리 시스템으로 향이 2,000 평방미터까지 퍼지도록 하는 기술이다. 질레트랩스의 발열 면도기는 warming bar를 이용해서 면도하는 동안 온기를 전함에 따라 면도하는 내내 뜨거운 타월로 감싼 후에 면도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고 한다. 가장 흥미로운 제품은 Opte다. 다른 제품들이 기존에 있던 디바이스들을 개선했다면 이 제품은 전에는 사용되지 않았던 물건을 만들어냈다. 전동 면도기 정도의 크기로 면도기처럼 천천히 얼굴을 지나간다. 얼굴을 지나는 동안 스캐너가 피부를 스캔하고, 각 부위의 색소 침착이나 피부 톤을 분석한다. 그리고 잡티를 지울 만큼의 파운데이션 (잉크)을 소량 분사한다. 실제로 사용하는 영상을 유튜브에서 보았는데 화장을 한 티가 나지 않고 원래 좋은 피부인 것처럼 깔끔하게 얼굴에 파운데이션이 프린트 되었다. 닦아낸 뒤에 남는 것도 거의 없어서 실제로 얼굴에 분사되는 양도 극히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젠더리스, 젠더뉴트럴이 한참 트렌드였다. 이후 화장을 하는 남자들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소수의 영역이고 화장하는 남자들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남자들도 화장을 하고 싶을 거다. 그러나 여자들의 일반적인 메이크업처럼 화장한 티가 나버리면 곤란한 사람들이 많다. P&G의 Opte는 이러한 남성 수요에 가장 적합한 디바이스가 아닐까 싶다. 화장을 한 티는 전혀 나지 않으면서 피부톤을 고르게 만들어서 좋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스캔 프린팅 메이크업 툴이 일반화 되면 남성들도 더 많이 화장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로레알은 Perso라는 3-in-1 디바이스를 선보였다. 개인별 맞춤 화장품 제형을 만들어주는 장치다. 특허 받은 모터 카트리지 시스템을 통해 4단계에 걸쳐서 맞춤 화장품을 만들어 준다. 먼저 피부 상태를 분석한다. Perso 앱으로 셀카를 찍어서 AI가 피부 상태를 체크해준다. 다음으로 Perso가 지역의 데이터를 통해 피부상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환경적 요소 (날씨, 온도, 자외선, 습도, 꽃가루) 등을 분석한다. 세번째로 사용자가 원하는 텍스처, 보습도, 그리고 피부 고민을 입력하면 마지막으로 모든 데이터를 조합해서 해당하는 제형의 화장품이 딱 한 번 쓸 만큼 만들어져 나온다.

개인적으로 Perso가 스킨케어 면에서 많이 선호될 가능성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Perso는 스킨케어 뿐만 아니라 립스틱과 파운데이션도 제조해준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늘아래 같은 색조 없다는 말로 화장대를 채운 립스틱, 립틴트, 립마그넷 등등이 몇 개던가. 당장 내 화장대에는 베이스 메이크업 제품만 다섯가지가 넘고, 립스틱은 몇 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볼때마다 소비에 대한 죄책감도 들고, 저걸 꼭 써야 된다는 부담도 생긴다. 그런데 기계 하나로 다 해결이 된다고 하니 정말 매력적이다.

뉴트로지나는 AI를 이용한 skin health 코치 앱, 뉴트로지나 Skin360을 선보였다. 이용자가 가진 피부 목표를 바탕으로 개개인의 이용자에 맞춰서 행동을 교정해주는 앱이다. 앱을 통해 전문가를 만나고 와 개인 맞춤형 조언을 얻을 수 있으며 사용한 스킨케어 제품을 추적하여 데일리 루틴이 장기적으로 피부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도 알려준다. NAIA (Neutrogena AI Assistant)라고 하는 가상의 피부 코치가 8주간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용자와 친밀감을 형성하며 행동 교정에 들어간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스킨케어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을 개인별 맞춤으로 제공하여 일상의 루틴을 만든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삼성은 사내 프로그램인 C-Lab을 통해 5개의 프로젝트를 선보였는데 그 중 3개가 뷰티와 웰니스와 관련이 있었다. Becon은 두피 분석을 통한 탈모 방지를 위한 홈케어 솔루션이다. 디바이스를 이용하여 두피의 상태를 10가지 (모근 밀도, 각질, 민감도, 온도 등)로 진단하고 머신러닝 알고리즘으로 분석하고 앱이 분석 결과에 맞는 개선책을 알려준다. SunnySide는 창문 모양의 조명으로 실제 햇빛의 스펙트럼을 만들어내는 인공 햇빛 조명이다. 이용자들은 화상이나 피부 노화의 걱정없이 햇빛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림 액자처럼 집에 쉽게 걸 수 있는 형태로 제작되었다. 개인적으로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는데 아쉽다. 제품으로 출시되면 Opte와 더불어 가장 사고 싶은 디바이스다. Ultra V는 매일 자외선을 기록하는 서비스다. 이용자의 자외선 노출 정도를 바탕으로 피부 상태와 비타민 D 합성 등을 조절할 수 있게 한다.

아모레퍼시픽은 3D 프린터를 개발하는 Lincsolution과의 협업으로 3D 프린팅 마스크 팩을 선보였다. 이 제품은 아이오페 랩을 통해 이미 출시가 되었다.

살아남기 위한 뷰티업계의 전통 강호들의 혁신과 뷰티와 전혀 관계없던 기업들의 새로운 시도가 흥미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렵다. 소비자의 입장이라면 마냥 즐기면 될 텐데. 공학 기술이 뷰티 업계에 적용됨에 따라 원료사에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고민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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